남들은 아메리칸드림 혹은 꿈의 나라 기회의 나라 살기 좋은 곳 등등 미국을 좋아라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고개를 젓곤 한다. 왜냐하면 난 미국은 진절머리가 나도록 고생한 기억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3년전 1998년이었다. 러시아에서 살던 나에게 미국이란 곳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가게 된 곳. 시카고! 러시아와 빚대어도 맞먹을 추위와 처음 인종차별과 고난을 겪게 된 곳이다. 한 지인분의 도움으로 입학하게 된 신학교(미국에서 알아주는 M학교) 그곳에서의 일년은 너무나도 잘난 나를 죽이는 곳이었다. 언어의 부족함과 함께 지식의 부족함 그리고 너무나 자신만만하던 나를 바닥까지 내몰았던 기억이 있는 곳이 미국 시카고였다. 그곳에서의 기억때문에 다시는 미국이란 나라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건만...
13년이 지난 지금 가족들을 몽땅 다 데리고 이곳 미국 캘로포니아로 오게 되었다.
우리 와이프는 잘 모른다. 미국이 별거 없다는 사실을. 한국보다 불편하다. 공무원들은 더 딱딱하고 융통성이라고는 눈꼽만큼만 있는 곳. 그리고 너무나 빡빡한 규율과 규칙으로 인해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기만 하고 용납하지 않는 곳이다.-개인적인 느낌이다. 토달지 말자!
미국을 다시 올거라고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시 공부를 마치려면 미국이 최고의 나라였고 또한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선교학과 성서고고학을 배우기엔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는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한 교회에서 8년간을 사역하면서 점점 정체되어가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기 시작한 내 모습에서 난 순간 위험을 느꼈고 발전하지 않는 내 모습, 소명과 비전이 흐릿해져가는 내 모습에서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딘가로 가서 날 다시금 훈련시키자 정비하자고 생각했고 그 결과 영국을 떠올렸다.
영국 웨일즈 부흥의 시작이 있던 곳에 복음주의 신학교. 한국사람이 거의 없는 곳. 그곳이다. 하고 맘을 준비하고 차근차근 영국행을 준비하던 중 올해 5월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사역을 하시는 지인 목사님을 만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