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부담안가는 어플의 자유로운 설치이다. 필요한 어플을 찾아서 설치만 해주면 내가 원하는 일들을 해 낼 수가 있다.
난 오늘 토이카메라란 어플을 깔아보았다.
이 어플은 토이카메라로 찍음 효과를 보여주는 어플이다.무료이고 간단해서 장난삼아 찍을 수 있다.
쉽고 간단하게 아이폰의 사진기 기능을 사용하여 멋진 사진을 찍어보자!^^*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전쟁입니다..이제부터..12시가 땡하는 순간 무한 클릭질이 시작되고 서버는 초토화 될것입니다.
무수한 클릭과 트래픽으로 인해 사이트는 무방비상태와 마비가 되고 퇴근해버린 담당자의 전화는 불이 날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날.
아이폰 예약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난 싹을 자르고 말았다.
가만히 조용히 위태위태하던 희망이라던 싹을 잘라버렸다.
이제 더이상의 미련은 없다.
다만 악의만 있을 뿐.
그것이 어떻게 변할 지..
지금 나의 자리가 변한다면 그 악의는 더 커질 것이고 세상의 지각을 변동시킬지도.
히틀러또한 그러했다.
악의가 커지고 커져서 유럽을 삼키고 말았듯
지금의 내자리가 변한다면 더 커질 것이다.
내게 악의를 키우게 한 자...그 악의에 삼키워 질 것이다.
-데런 D. 맥켈런-
지난 11월8일 연예인 이광기의 아들인 석규가 신종플루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석규의 나이 7세..한참 엄마 아빠와 즐겁게 보내던 어린 아들의 죽음은 두 아들을 둔 아빠인 나로서도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그것도 요즘처럼 신종플루가 유행아닌 유행하고 있는 지금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아침에 인터넷뉴스를 통해서 이광기 아들의 사망 소식이 전헤졌다. 뉴스를 클릭해서 읽던 중에 나도 모르게 멍해지면서 이광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진 속 그의 얼굴은 평소 장난스럽게 말을 하던 그런 그의 얼굴이 아닌 아들을 잃은 아빠의 얼굴이었다. 평소 티비를 즐겨보지 않는 나였지만 스타쥬니어 붕어빠이란 프로그램은 참 좋아했다. 스타들의 자녀들이 나와서 엄마아빠와 함께 방송을 하는 것을 보면서 좀 안그런 적도 있지만 부모와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대가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 곳에서 석규를 처음 보았다.
이광기가 교회를 다니고 또한 아이들도 교회에 열심인 것을 지인들을 통해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심정이 얼마나 아플까 공감도 되었다.
2주전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신종플루 환자가 나왔다고 했을때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우리 부부가 모두 출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어린이 집 외에는 방법이 없던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낼 수 밖에 없었고 아직까지 건강하게 잘 다니고 있다. 그러던 중 이광기의 아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우리 뿐만이 아니리라 더욱이 병원에서 신경을 써 주었던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죽을 수 밖에 없음을 보았을 때 사람의 생이란 것이 우리의 힘으로 될 수가 없는 일임을 통감했다.
이광기 아들의 죽음은 남의 아들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아들의 죽음과도 같았다. 나의 아들은 비록 죽지 않았지만 사진 속에서 오열하는 아빠는 나와 같은 아빠였다. 자녀를 둔 사람으로서 이광기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있을까?
혹간에는 병원에 대한 추궁과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부모의 아픔을 부추기는 일이다. 더이상 이런 아픔을 가진 이들이 없었으면 한다. 연예인 공인의 아들의 죽음이 가져다 준 경종과 슬픔은 우리에게 먼 이야기기 아닌 가까운 이야기이다.
어린 석규는 분명히 하나님 품안에서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부모님과 만난 날을 기약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엄마아빠가 그만 울기를 바랄 것이다. 함께 했던 시간이 있기에 더욱 소중하고 그런 만큼 그 기억이 바래지지 않도록 우리가 지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미니홈피에 남겨진 이광기의 석규에게 쓴 편지는 그의 아들 사랑을 다시한번 보여준다.
오늘 아침 곤히 잠들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죽었다면 난 뭐라했을까? 아마도 사랑한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으리라...
NIKON CORPORATION | NIKON D9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200sec | F/2.8 | -1.33 EV | 50.0mm | ISO-400 | Flash did not fire. | 2009:09:24 08:10:49 |
슬픔이 기억과 판단에 도움이 된다....
출처: 한겨레
슬픈 감정이 기억력을 높이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조셉 포가스 교수팀은 호주 과학저널(ASJ) 최신호에 슬픈 사람이 행복한 사람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주변 정황과 외부 상황도 더 많이 살피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우선 실험 대상자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거나 과거 일을 회상하게 해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게 했다. 이들이 다양한 판단을 내리게 한 결과, 기쁜 상태인 실험군이 소문이나 미신을 더 쉽게 믿었다. 반면 슬픔 실험군은 즉흥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고, 종교나 인종적 편견에 쉽게 빠지지도 않았다. 또 눈으로 본 것도 잘 기억해 냈다. 포가스 박사는 “부정적인 기분은 조심스럽고 주위 상황에 대해 매우 사려 깊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며 “슬픔은 상황을 잘 다뤄야 하는 정보처리 전략에 적합한 능력을 키워준다”고 주장했다.
두 사긴의 차이는 석달..8월과 11월의 차이...
그러나 맘은 항상 같다는 것...
음 화정에서 맛있고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기란...힘들다..
아니 없다..유일무이한 스타벅스와 이디야 커피..그리고 커피숍인지
뭔지 정체를 모를 이상한 카페..그리고 여자들의 수다방..앤하우스와
화이트 엔젤...도저히 참을 수 없다..ㅋㅋㅋ
그러던 어느날 아주 귀한 멋지구리한 카페가 오픈했다.
알프레도 coffee & Wine...
NewYork 필의 좋은 카페가 생겼다...
사랑항는 우리님들과 알프레도를 방문해 주었다.
자세한 사항은 담에..
왜냐구? 그날은 탐방이라기 보다는 그저 방문이었으니까..
다음엔 화정에 있는 카페를 몽땅 탐방해서 알려주도록 하마!!
애스프래소가 참 맛있었다...^^
문득 호영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막 군에서 제대해서..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시절..동생면회를 가게 되어서 만나게 된 동생의 친구였던 호영이..
내 동생이 누군가 그것도 여자에게 말을 걸어서 친구를 만들었다는 것은 내 동생을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까무라칠 이야기 이다..그러나 그것이 인연이었을 줄은.
면회를 가게된 날 아침 지각을 싫어하고 약속을 어기는 것을 싫어하는 내게 그녀는 당당히 지각이란 팻말을
달고 나타났고 당당히 내게 왜 처음봤는데 반말이냐고 대꾸하였다.
호영이는 나의 카리스마에 주눅들지 않는 아주 흔치 않는 여자였다. 그것도 초면부터-나중에 물어보니 그 순간 자기가
왜그랬을까 후회했다고 하더라.오늘 죽는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 후에 서로가 인연이 되어서 만나게 되었고 백일이 흘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 하는 생각도 못했다. 그저 만나는 것이 좋았고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그러다가 호영이는 이스라엘 단기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그일로 인해 호영이는 고민이 많았다. 나를 두고 가는게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난 항상 가지고 있던 생각이 있었다. 첫째가 하나님의 일 둘쩨가 나의 일이었다.
선교는 하나님과의 약속 나와는 그 후라고 당당히 말하고 그녀에게 선교를 가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선교를 나가서
서로의 맘이 멀어지게 되면 그것이 우리의 길이라고 하였고 그 후에도 하나님이 우리의 맘을 지켜주시면 돌아와 결혼
했으면 한다고 고백했다.-난 이걸 프로포즈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와이프는 그건 아니라고 한다..ㅜ.ㅜ-
그리고 그 결정이 나를 참 힘들게 했다. 난 쿨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쿨하다고하였다.
그것이 나였다. 그러난 난 곧 내가 결코 호영이에 대해서는 쿨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딜가더라도 호영이의 환영이 보이고 환청이 들렸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그리워 하고 애타게 찾으리라곤 상상도
못해봤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고 오죽했으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도록 빌고 또 빌었다.
그래야 빨리 들어오니까...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일촉즉발의 때였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제3차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난 상관없었다.
그저 호영이만 들어온다면야 3차대전이던 4차대전이던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참 미쳤었다..ㅋ
<이스라엘에서의 호영이>
힌극에서 인천공항에서 호영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게다가 비행기는 연착이 되었다. 기장과 공창직원들을 몰살시킬 계획을 조금씩 발동기킬려고 할 무렵 그녀가 돌아왔다. 공항에서 꼭 안아주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뭐라하던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한강이 보이는 카페를 데려가서 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결혼하자고 하였다. -우리 부모님이야 이미 게임 끝났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떡줄 생각도 안하셨단다-흔쾌히(!) 승낙을 얻어냈다. 그리고 결혼 준비를 하였다.
호영이는 5월의 신무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주례사님이신 조용기 목사님의 스케줄엔 우리 호영인 10월의 신부였다. 그래서 난 결혼사진만큼은 5월에 찍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는 황당해 하는 웨딩플래너를 대동하고 5월의 신부계획에 돌입했다. 난 기꺼이 5월의 신부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5월 15일 우리는 결혼앨범 촬영을 했다. 장소는 스튜디오와 야외촬영(덕수궁)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사진작가가 여자분이셨는데 사진찍는 내내 나땜에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단다.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부답되었다는 말과 함께...
5월의 신부가 되었던 호영이는 10월에 나에게 시집을 왔고 6년이 지난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버렸다.
그 때의 호영이는 잊혀질 수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호영이는 놓칠 수없는 아름다움이다.
비록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지만 나의 맘 속에는 아직도 호영이는 23살의 어린 신부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호영아...
영원히 사랑하며 살자..그리고 미안하다.